서울 봉천동에서 병원을 개업 중인 윤주홍 장로님은 ‘봉천동의 슈바이처’로 불리고 있다. 봉천동의 빈민촌이던 시절부터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아이가 없고, 그의 신세를 지지 않은 어른이 없을 정도다. 오죽하면 그 동네 사람들이 그를 슈바이처로 부르며 친부모 형제처럼 따르겠는가?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1973년 사랑하는 자식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아이를 친 택시기사가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안고 뛰어든 병원이 공교롭게도 그의 병원이었다. 그는 결과적으로 자기 자식에게 사망 진단을 내린 아버지가 된 셈이었다.
그 후 한동안 밤잠을 설치는 고통의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일어섰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신의 자식을 데려가신 것은 자신을 슬픔 속에 내버려 두시기 위함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자식처럼 돌보게 하시기 위함임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의 표현대로, 단 한 명의 자식을 잃고 수많은 자식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자신이 당한 고난을 통해 그는 그처럼 아름다운 자기 확장을 이룬 것이다.
이재철,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 129~130쪽, 홍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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