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얀 키르케고르(Seren Kierkegaard)는 마차에 탄 한 부자(富者)의 예화를 들었다. 부자는 불 켜진 마차 안에 앉아 있고, 마부는 차가운 바깥 바람을 쐬며 말을 몰고 있다. 부자는 불빛 아래 앉아 있었기 때문에 바깥에 펼쳐진 전경, 마부가 놓칠래야 놓칠 수 없었던 그 영광스런 광경을 보지 못했다. 과학이 피조 세계에 더 많은 빛을 비추고 있는 현대에는 그 빛으로 인해 오히려 보이지 않는 저편의 세계가 더더욱 흐려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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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 중에 병적일 정도로 깔끔한 사람이 있다. 그의 집은 정원만 해도 10에이커(약12,000평)가 넘는데, 길고 구불구불한 차도를 따라 그가 정원을 지날 때마다 흉하게 죽은 잣나무 가지들이 눈에 거슬렸다. 어느 날 가지치기 용역회사에 알아봤더니 그 나무들을 다 다듬으려면 5,000달러는 들 거라고 했다. 엄청난 가격에 깜짝 놀란 그는 전기톱을 빌려와 몇 주 동안 주말마다 사다리에 불안하게 걸터앉아 손에 닿는 가지를 모두 잘라냈다. 그리고 용역회사에 다시 전화해 이제 얼마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달갑지 않은 답변을 들어야 했다. “로드리게스 씨, 만 달러는 들 겁니다. 있잖습니까, 저희는 그 낮은 가지들을 활용해 더 높은 가지를 자를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값비싼 특수차량을 가져가 작업을 해야 하게 생겼습니다.”
어떤 면에서 현대 사회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나의 이웃과 같다. 우리는 서구 문명이 딛고 선 낮은 가지들을 잘라버렸고, 그 때문에 위의 더 높은 가지들은 이제 까마득하고 위험천만하게 보인다. “우리는 신성한 숲의 가지들에게서 빛을 빼앗았고 높은 곳과 신성한 시내의 강둑을 따라 비취던 빛을 꺼버렸다.”애니 딜라드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