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3:1~20절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127세에 헤브론에서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매장하기 위해 헷 족속에게 땅을 구입하고자 했습니다. 헷 족속은 아브라함이라면 자신들이 거주하는 땅 어디든지 자유롭게 사용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헷 족속의 배려에 아브라함은 몸을 굽혀 감사를 표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정당한 대가를 주고 막벨라 굴을 사겠다’고 했습니다.

에브론은 성문에서 모든 사람이 듣는 중에 그곳을 거저 주겠다고 또다시 언급했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배려를 모두가 알았으면 하는 속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사백 세겔이나 되는 땅을 공짜로 주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에브론의 속마음이 드러납니다. 「"저의 말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땅값을 친다면, 은 사백 세겔은 됩니다. 그러나 어른과 저 사이에 무슨 거래를 하겠습니까? 거기에다가 그냥 돌아가신 부인을 안장하시기 바랍니다(15)."」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헷 사람들은 상처(喪妻)한 아브라함을 정중히 대했습니다. 그리고 고인(故人)과 고인의 가족을 위해 자기 땅을 제공하는 성의도 보였습니다. 어른께서 고인의 묘지로 쓰시겠다고 하면, 우리 가운데서 그것이 자기의 묫자리라고 해서 거절할 사람은 없습니다.”라는 말에서 아브라함을 향한 그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을 잘 살펴보면,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른께서는 우리가 하는 말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어른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세우신 지도자이십니다. 우리의 묘지에서 가장 좋은 곳을 골라서 고인을 모시기 바랍니다. 어른께서 고인의 묘지로 쓰시겠다고 하면, 우리 가운데서 그것이 자기의 묘 자리라고 해서 거절할 사람은 없습니다(6)."」

그들은 아브라함을 매우 존대했습니다. 헷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존대했음을 ‘어른께서는, 어른은, 어른께서’라는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심지어 자신들의 가족을 위한 매장지라도, 아브라함이 요구하면 거절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배려인 셈입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라는 표현대로 아브라함은 어느 날 갑자기 헷 족속의 땅을 침입한 이방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헷 족속은 아브라함을 그 땅의 주인처럼 대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그들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세상에서 우리가 이런 존재가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도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성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인내가 우리 안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그분을 닮게 마련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은 대단한 기적이나, 대단한 환상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주는 능력이 그를 그렇게 세워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에브론에게 땅값을 치르고 사라를 매장했습니다. 헷 족속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정당한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이곳은 가족 공동묘지가 되었습니다. 이방 사람의 땅이 인생을 치열하게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을 경외했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손주와 그 자손들이 함께 묻힌 거룩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특별히 자녀들이 자신들의 인생에 있어서 우연에 의한, 대박으로 어떤 대가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얻고, 자신이 수고한 만큼 결과를 얻는 것을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언젠가 우리도 막벨라 굴에 묻히게 될 것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수고해서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얻은 안식처임을 헷 사람도 알고, 이스라엘 자손들도 아는 그런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참 좋았다’고 하신 것처럼, 우리의 죽음도 ‘참 좋았다’하는 마지막이 되면 좋겠습니다.

사라의 죽음 앞에서 아브라함은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에서 눈을 감았다. 아브라함이 가서, 사라를 생각하면서, 곡을 하며 울었다.」 ‘아브라함이 울었다’는 표현은 참 어색하기만 합니다. 그는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러 가면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갔을 때도, 온갖 어려움이 몰려올 때조차도 그는 울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아내의 죽음 앞에서 서럽게 울었습니다. 저는 슬프지만, 이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살다 보면, 누군가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가 있고, 또 함께 부르심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귀한 일입니까? 다행스럽게 아직 우리에게 아내나 남편이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아름답게 가꾸어갈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여러분의 남편을 사랑하십시오. 부디 여러분의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가정의 달 5월! 여러분 모두 아름다운 가정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곧 그가 받은 몫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 그에게 일어날 일들을 누가 그를 데리고 다니며 보여 주겠는가?
- 전도서 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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