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1~23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을 향해 가는 여정에는 이삭도 포함되었습니다. 아니 이삭이 꼭 가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칼과 불을 들고, 이삭은 장작을 지고, 두 종과 함께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마는,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제사 드리기 위해 가는 길에 제물을 가져가지 않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전에는 집에서 기른 많은 양(羊)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조심조심 가져가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사지(死地)로 데려가는 일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자꾸 올라오는 한숨을 숨기면서, 진물처럼 자꾸 번지는 눈물을 참아가면서 겨우 평상심을 유지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삭의 질문을 받고는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습니다.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아브라함은 터벅터벅 산 위에 올랐습니다.

아브라함은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을까요? 출발하기 전 갑자기 제사드리러 가는 까닭을 묻는 아내에게 똑 부러진 대답을 하지 않은 것도 이상합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생명 앞에서는 너무 나약합니다. 늙은 아브라함도 죽음은 무섭기 마련입니다. 아브라함은 ‘차라리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혹시 죽는 것이 두려웠을까요?
아브라함이 그런 이유로 침묵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하나님을 믿었고, 아들을 주신 분이 그를 억지로 빼앗아 가는 몰인정한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았습니다. 때로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결국은 옳은 길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 길이 결국은 가장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브라함도 욥처럼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을까요? 『"모태에서 빈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욥기1:21)』
아브라함은 본래부터 빈손이었습니다. 100세의 나이에 아들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고, 이렇게 장성하도록 지켜주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큰 부자가 되어 그 지역에 유력한 사람이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태도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이것입니다. 아니, 애써 잊으려 하는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우리 것은 없었다는 사실, 그래서 주님이 주신 것들로 살아가는데, 그것들이 사라지면 전부가 없어진 것처럼 절망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의 한 산을 향하는 아브라함의 순종에서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를 우리가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전부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세상 모두가 사라져도, 평소에 누리던 모든 것들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려도 ‘자신에게 진짜 전부’가 누구인지를 혼동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기서 여러분께 두 가지를 묻고 싶습니다. 하나는 이때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땠을까?하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두 번째 질문은 만약 여러분은 아버지께 이런 요구를 듣는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제가 너무 잔인하죠? 죄송합니다. 다른 방법으로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저마다 괴로움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많이 힘드실 수도 있고, 속상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기도 제목하고, 자식 한 명하고 바꾸자고 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분은 아닙니다. 다만,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차라리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과 아픔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부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번제물을 ‘하나님이 준비하실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우리는 결과를 잘 아니까요. 하나님이 준비하셨나요? 아니면 이삭이 제물로 죽었나요? 네! 준비하셨습니다. 이게 우리가 쓰는 말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선포하는 말은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의 질문을 듣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실 게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신 분이라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아시는 분이란다.”

민수기 14:27~28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이 언제까지 그럴 것이냐? 나를 원망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을 내가 들었다.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너희가 나의 귀에 들리도록 말한 그대로,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하겠다.」
이삭은 묵묵히 걸었습니다. 이미 침통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혹시 눈치챈 것은 아닐까요? 적어도 자신을 묶으려 할 때,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120세를 향해 가고 있고, 자신은 젊음을 향해 치닫는 나이였습니다. 동행한 종들은 산 아래 머물렀으니, 늙은 아버지를 제압하거나 도망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노쇠한 아버지에게 묶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칼을 들어 내리치려고 하는 아버지의 눈을 보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그는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이삭의 입장에서, 이삭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반항하거나,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결단과 순종이 아들 이삭에게도 있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리신 심오한 그림의 전체 윤곽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께는 가장 행복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삭이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죽음에 임했습니다. 도망치지도 않았고, 저항하지도 않았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모리아 땅이 나중에 예루살렘이 됩니다. 그리고 그 예루살렘성 영문 밖에서 나무에 묶인 채 예수님은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신제사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분입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이런 나쁜 행동을 배울까 걱정하셨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왜 이삭을 죽여 번제를 드리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이삭의 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모리아 땅의 사건이 모형이라면, 예루살렘성 밖 갈보리 사건은 실제 사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고 싶은 사람은 모리아 땅의 한 산에 올라가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노력은 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젠가 우리에게 이런 걸 요구하실지도 모릅니다.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결단과 순종,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알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 만큼 소중한 그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면.... 저와 여러분은 아침 일찍 일어나 모리아 땅으로 향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하나님은 참 행복한 분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받는 분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 아브라함에게 마음껏 복을 부어주시니 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드립시다. 그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갖는 것! 그리고 이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임을 깨닫는 것! 그러면 됩니다. 아마 하나님은 지금쯤 여러분 때문에 벌써 마음이 설레고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 신명기 3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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