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1~3절
드디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이 생겼습니다. 우리에게도 오랜 소망과 꿈이 있습니다. 그걸 이루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바쁘게 출근(등교) 버스를 탑니다. 늦은 밤이 되어도 손에서 일(공부)을 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능성만 있다면 가느다란 희망을 붙잡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소망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죽은 자식 고추 만지기’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어버이가 죽은 자식 때문에 원통하고 절망하지만, 죽은 사람을 되살릴 길은 없습니다. 덧없이 흘러간 세월이 수십 년, 고목처럼 곧 쓰러질 듯 늙어버린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이를 품을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믿을 수 없었습니다. 중년이 지나면서 자기 몸에서 일어난 일을 훤히 알고 있는 사라는 더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사라는 천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장막 밖에서 남몰래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90세가 다 된 자신이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는 말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럴 만합니다. 암요! 그럴 만합니다.

그런데 진짜 자기 아이를 안게 된 것입니다. 헛웃음이 진짜 웃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불가능이 가능이 되었고, 소망이 현실로 바뀌었습니다. ‘비웃음’이 웃음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같은 웃음이지만, 실체와 내용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쓴웃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래 웃음은 단것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라는 쓴웃음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는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만큼 나이가 들었고, 아브라함 또한 연세가 아주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라는 현실성 없는 말 앞에서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로 현실은 소독 냄새나는 병원 귀퉁이에서 맞는 주사만큼이나 공포스럽고 따갑습니다.
그러나 사라의 쓴웃음은 본래 의미의 웃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웃음은 어느 쪽입니까? 저는 여러분이 늘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아름다운 당신의 눈가에 절망적인 자포자기 웃음이나, ‘그럴 리가 없다’는 쓴웃음이 서려있다면, 사라에게 일어났던 일이 여러분에게도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라에게 말씀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눈물을 여러분의 절망을, 여러분의 비탄을 환한 웃음으로 바꾸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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