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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창세기

by 선한일꾼 2024. 9. 1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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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1~38

창세가 18장에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가던 세 사람이 아브라함의 영접을 받은 내용을 나눴습니다. 세 사람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맘 때쯤 아들을 낳게 되리라는 말씀과 함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대해 말씀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지중에 하나님을 대접했던 것입니다. ‘부지중에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말뜻을 그대로 해석하면, ‘알지 못하고 또는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라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이 말은 아브라함이 살았던 삶의 태도가 항상 그러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는 늘 나그네를 대접했고, 그들을 보이는대로 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신실한 만큼 사람에게도 진실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하나님의 천사를 대접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도 혹시 이런 기회가 오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 자신의 삶의 자세가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에게 신실함과 진실함으로 물들어 있었을까 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소돔을 구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한 번도, 두 번도 아닌 여러 번에 걸친 설득을 하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의 끈기와 하나님의 자비가 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이를 구하는 이들처럼 최대한 멀리, 가깝게 구조의 끈을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결국 10명의 의인이 없어 그 도시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직도 구조의 줄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27~28절을 읽겠습니다. 27. 다음날 아침에 아브라함이 일찍 일어나서, 주님을 모시고 서 있던 그 곳에 이르러서, 28. 소돔과 고모라와 넓은 들이 있는 땅을 내려다보니, 거기에서 솟아오르는 연기가 마치 옹기 가마에서 나는 연기와 같았다.

아브라함은 다음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주님을 모시고 서 있던 그곳에 와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둘러싼 넓은 들에서 옹기 가마처럼 오르는 연기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아마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자비를 끝까지 붙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끈기는 주효했습니다. 29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들에 있는 성들을 멸하실 때에,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롯이 살던 그 성들을 재앙으로 뒤엎으실 때에, 롯을 그 재앙에서 건져 주신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아브라함을 만나고, 소돔을 향했던 하나님과 그 일행은 분명 세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9:1절을 보니 소돔 성 어귀에 이른 사람은 두 사람이었습니다. 한 분이 사라졌네요? 성문에 앉아 있던 롯은 두 사람이 나그네임을 금방 알아봤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을 집으로 영접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둘은 길에서 하룻밤을 보내겠다고 합니다. 롯은 강권하여 두 사람을 데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소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소돔 성의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모든 남자가 몰려와 두 사람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동성연애자들이었고, 남자로 보이는 두 나그네를 가만두지 않을 속셈이었습니다. 간청에도 물러서지 않자, 롯은 남자를 가까이하지 않은 딸 둘을 주겠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롯이 딸을 내주겠다고 한 것은 당시 문화적인 특징입니다. 나그네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은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관습이었습니다. 딸들을 함부로 내준 것이 아니라, 그만큼 나그네를 지키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소돔성의 타락상을 보여줍니다.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젊은이는 철이 없어 그랬다치더라도, 노인은 나이가 들어 지혜와 지식으로 자신의 삶의 채웠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날 노인이 많다고 합니다. 나이든 사람은 많지만, 어른은 없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소돔에는 어른이 없었던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잘 여물지 않은 삶의 지혜를 가진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동물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는 그런 부류의 타락한 인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성에서 그들의 악함을 직접 보신 것입니다.

결국 천사들은 아우성을 치는 소돔 남자들의 눈을 멀게 하여, 롯의 대문을 찾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두 사람은 롯에게 온 가족을 데리고 피신하도록 이릅니다. 하지만, 롯의 사위가 될 사람들은 이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14절을 읽겠습니다. 롯이 나가서, 자기 딸들과 약혼한 사윗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롯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서두르게. 이 성을 빠져 나가야 하네. 주님께서 이 성을 곧 멸하실 걸세." 그러나 그의 사윗감들은 그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복음을 농담으로 여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와 죽음의 도시에서 생명과 구원의 길로 피신하라고 아무리 애타게 말해도, 믿어주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은 두 가지 양면성을 가집니다. 하나는 구원이요, 다른 하나는 심판입니다. 롯의 사위가 될 사람들은 그곳에서 결국 심판을 받고 맙니다. 롯은 아내와 딸을 데리고 근처 가까운 소알로 도망을 칩니다. 그마저도 하나님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아브라함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롯의 아내는 도망치다 말고, 소돔을 돌아보았습니다. 그곳은 마음이 가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피신할 때에 뒤를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귀한 것도 결국은 불 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결코 생명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롯의 아내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결국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롯은 소알에 사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랬을 것입니다. 눈앞에서 거대한 성들이 무너지는 것을, 하나님의 심판을 보았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요? , 아브라함에게 돌아갔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두 딸을 데리고, 산속을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두 딸이 자손을 보존하기 위해 어리석은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술 취하게 하고, 들어가 아이를 갖습니다. 첫째 딸은 모압, 둘째 딸은 벤암미, 즉 암몬과 모압자손의 선조를 낳게 됩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갔더라면, 대를 이을 친척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자손을 이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두 사람이 낳은 두 민족, 모압과 암몬은 나중에 이스라엘에게 큰 짐이 됩니다. 그리고 결국,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끝까지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억하심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끝까지 하나님 앞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셔서, 롯과 그의 가족을 구원하셨습니다. 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에게 새로운 삶의 길이 열려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끈질기게 서 있는 연습을 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 앞에서 솔직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을 결코 지나치지 않는 그런 분입니다.

둘째, 타락한 소돔은 결국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용서하고 싶어하셨지만, 그 땅은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만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온갖 더러움으로 가득찬 죄악의 땅은 결국 불길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오늘날 점점 타락해가는 이 시대가 걱정됩니다. 젊은이도, 노인도, 쾌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나이가 들어 주변을 돌아보아도 될만한 힘 있고 권력있는 자들의 끊임없는 물질에 대한 갈망과 탐욕에 혀를 내두르곤 합니다. 결국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누가 알려주면 안될까요?

셋째, 늦었더라도, 믿음의 공동체로 돌아오십시오. 롯은 거지 신세가 된 자신이 창치해서 아브라함에게 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럴 때, 체면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돌아갔어야 합니다. 또한 그런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모압과 암몬을 낳게 되고, 결국 역사 속에서 비참하게 사라지고 마는 운명을 맞이합니다. 자손을 보호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나중에 모든 자손이 비참하게 사라지는 일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많이 늦었어도, 돌아오기만 하면 기회는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놓친 기회들 때문에 방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앞에서 기다리는 삶의 길을 선택하십시오. 믿음의 길에서 다시 한번 올바르게 제대로 사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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