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18절
아브라함의 주된 거처는 마므레였습니다. 그는 마므레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정착해서 살았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아브라함이 네겝 지방, 즉 마므레보다 지중해 해변 쪽에 가까운 남쪽 부근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블레셋은 본래 그리스 남부 에게해 지역의 사람들로서, 다른 민족의 유입 등의 이유로 그곳을 떠나, 가나안 해안가에 정착한 후, 점차 내륙으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에게해 문명으로 유명한 지역에 살던 이들이 당시 최고의 기술과 문화를 가지고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자, 그 지역의 판도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 다윗 시대에도 블레셋 사람들은 철기 문화를 앞세워, 아직 청동기 문화를 벗어나지 못한 이스라엘을 압박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비멜렉이라는 말의 뜻은 ‘아버지는 왕이시다’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어느 개인의 이름이라기 보다는 그 땅의 통치자의 직함에 가깝습니다. 옛날 고조선의 단군왕검도 마찬가지입니다. 단군왕검이라는 직책이 있었고, 여러 사람이 대를 이어 그 자리에 앉아 통치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보자,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침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 여인을 아내로 삼고 싶어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이 90세가 다된, 여성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나이가 많은 사라를 보고 아내를 삼고 했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학자들마다 여러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저는 당시 상황과 오늘날이 다른 물리적, 환경적인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날도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여성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기는 훨씬 더 이른 시기에 그치게 됩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기, 즉 가임기가 그쳐도 그 이후로 더 많은 시간을 살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때, 수명이 오늘날보다 훨씬 길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연령 때와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시기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50세에 사망을 한다고 생각해 보면, 아직 60년이나 살만큼 젊고 건강한 나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설일 뿐입니다. 성경은 무려 3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많은 시대를 거쳐 읽히고, 연구되어 왔습니다. 우리가 모든 시대를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성경 말씀에 담긴 내용들을 ‘오늘의 언어’로 모두 풀어낼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런 모든 과정을 통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고 계시고, 오늘도 그 일을 계속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이런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셨습니다. 3절입니다.「그런데 그 날 밤에 하나님이 꿈에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네가 이 여자를 데려왔으니, 너는 곧 죽는다. 이 여자는 남편이 있는 여자다."」 아비멜렉은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에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의 누이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한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잘못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7절을 읽겠습니다. 「이제 그 여인을 남편에게로 돌려보내어라. 그의 남편은 예언자이므로, 너에게 탈이 나지 않게 하여 달라고 기도할 것이고, 너는 살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너에게 속한 사람들이 틀림없이 다 죽을 줄 알아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예언자(선지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탁월한 선생님입니다. 동시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선지자였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선지자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인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하면, 그가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어떻게 보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창조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존재가 아브라함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16:17~19절을 찾아 읽겠습니다. 「1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합니다. ‘선지자적인 삶을 살라!’ 여기서 선지자적이란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린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삶이, 우리의 자세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표지판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현장을 찾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이정표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렇게 부르셨고, 아브라함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렇게 부르셨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갈 때 진정한 믿음의 후예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침 일찍, 아비멜렉은 신하들을 불러 이 사실을 알리고, 아브라함을 불러 항의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누이 또한 맞다’고 항변했습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양 떼와 소 떼와 남종과 여종을 선물로 주고,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땅에서 자리를 잡고 살 수 있도록 영주권(?)을 발급해 주었습니다. 17절을 읽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그의 여종들이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태를 열어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하자, 아비멜렉의 가문의 태를 열어주셔서,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비멜렉도, 신하들도, 아브라함도 몰랐지만, 하나님이 이미 그 가문의 태를 닫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용기있는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은 또다시 사라를 아내가 아닌 누이로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안위를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잘못을 발견합니다. 그는 자신을 지켜주겠다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삶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용기있는 그리스도인일까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서, 다가온 위험의 순간을 이겨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요?
둘째,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를 굳게 붙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실망스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붙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변하지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상황과 환경이 힘들어져도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분만이 우리 등을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반석이시오. 우리가 발을 디딜 수 있는 유일한 반석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신학교 졸업반때 일입니다.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마태복음 16장을 본문으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분은 앞으로 목회는 쉽지 않을 것이니, 웬만하면, 여기서 ‘그만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차피 기존에 있던 교회들도 문을 닫아갈텐데, 사서 고생하지 말고, 기술을 익혀 살라고 하셨습니다. 길이 앞으로도, 뒤로도, 위로도, 아래도 막혀 있으니... 우연히 잘될 거라는 생각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셨죠.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고, 저는 그 목사님이 설교를 어떻게 마무리하실지 궁금해졌습니다. 모든 문이 꽉 막혔으니, 열릴 가능성은 없으니 포기하라는 말에 신학생들은 질식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목사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문이 다 닫혀있고, 잠겨 있어도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여기 열쇠가 있으니까...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문이 다 잠겨 있고, 닫혀있어도, 열쇠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하시면서, 설교를 마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 아비멜렉에게 닫힌 모든 것을 열어주셨습니다. 닫힌 모든 것을 여는 열쇠는 기도입니다. 해법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마땅히 구해야 할 것을 기대하며 엎드려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 해법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구하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은 열쇠는 내려놓고 전전긍긍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닫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시겠습니까? 오늘 결정하십시오.
21.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십니다 (0) | 2024.09.23 |
---|---|
19.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0) | 2024.09.19 |
18.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0) | 2024.09.19 |
17. 하나님과 세운 영원한 언약 (0) | 2024.09.14 |
16. 하갈, 광야에서 주님의 천사를 만나다! (4) | 2024.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