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7:1~27절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엘 샤다이 – 우리는 하나님이 강력한 힘과 능력의 주인이심을 잘 압니다. 강인한 용사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머니처럼 따뜻한 가슴으로 우리를 안으시고, 그 온기로 우리를 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도 삶을 통해 배웠습니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아브람의 나이 99세가 되었지만, 그에게는 아직 아들이 없었습니다. 무려 24년을 기다려 온 아브람은 오늘 또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듣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말 뿐인... 약속」이라는 생각이 들만도 한데, 아브람은 하나님 앞에 다시 엎드립니다.
3절을 읽겠습니다.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있는데,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는 말은 그가 하나님 앞에 경배했다는 뜻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끈질긴 두 인격을 만납니다. 한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다른 한 편은 한없이 연약한 인간, 게다가 나이가 많이 들어 기력이 다한 아브람입니다. 결코 ‘서로 대등하다거나 수준이 맞다’고 말할 수 없는 양자임에도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꽤 오랜 세월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끝까지 언약을 주십니다. 세월의 깊이만큼 서로를 신뢰하게 되었기 때문일까요? 양자간의 균열이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친구와 같은 존재가 되어 주셨고, 아브람은 그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때로 엉뚱한 짓을 한 건 아브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계셨고, 아브람을 향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아브람의 관계를 보고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열심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배우는 사실 한 가지는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가 하는 점입니다. 때로 엉뚱한 짓을 하고, 또 그 짓을 반복하는 우리네 인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내와 사랑이 하나님께 있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우리도 아브람처럼 하나님과 사귈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조금 길지만 4~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4. "나는 너와 언약을 세우고 약속한다. 너는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다. 5.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만들었으니, 이제부터는 너의 이름이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다. 6. 내가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너에게서 여러 민족이 나오고, 너에게서 왕들도 나올 것이다. 7. 내가 너와 세우는 언약은, 나와 너 사이에 맺는 것일 뿐 아니라, 너의 뒤에 오는 너의 자손과도 대대로 세우는 영원한 언약이다. 이 언약을 따라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될 뿐만 아니라, 뒤에 오는 너의 자손의 하나님도 될 것이다. 8. 네가 지금 나그네로 사는 이 가나안 땅을, 너와 네 뒤에 오는 자손에게 영원한 소유로 모두 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아직까지 아들 하나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4~5절에서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만들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에 알맞은 이름을 지어 주십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체결할 약속은 아브라함은 물론, 그의 모든 자손과 대대로 세우는 영원한 약속이라고 말씀합니다(7).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될 뿐만 아니라, 뒤에 오는 너의 자손의 하나님도 될 것이다.”
현재를 살고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 미래’로 지칭되는 모든 시간을 초월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직 아들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께는 이미 주신 아들이고, 그의 자손이 번성하게 되는 일은 오늘 일어난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면,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허락하셨고,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25년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이 이렇게 놀라운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을 하신 하나님은 그리고 나서, 그 증거로 ‘할례언약’을 세웁니다. 이는 장차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할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할례는 태어날 때부터 사내아이의 포피를 벰으로써 그의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고, 모든 사람을 축복하시며, 그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닮아 ‘사랑하며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래의 이름도 ‘모든 민족의 어머니’라는 뜻의 ‘사라’라고 바꾸어 주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혼잣말을 내뱉고 맙니다. 17~18절을 읽겠습니다. 17.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면서 혼잣말을 하였다. "나이 백 살 된 남자가 아들을 낳는다고? 또 아흔 살이나 되는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18.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뢰었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꿋꿋한 믿음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브람의 입에서 불쑥 한마디가 튀어나왔습니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아브람의 말이 더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말씀을 들으시고, 다시 한번 확인해 줍니다. 내년 이맘때 낳게 될 아이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을 것을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의 말을 들으신 하나님은 이스마엘도 위대한 민족으로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99세에 집안의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이스마엘도 13세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영적인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기 전에,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름)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아이를 낳듯, 우리를 새로 낳아 이름을 지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종이요,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았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법적인 과정이 생략되어 있기는 합니다. 먼저는 죄의 종, 죽음의 노예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몸값을 치른 분이 계시지요.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그분의 노예, 그분의 종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종된 우리를 아들로, 딸로 입양함으로써, 이제 아무도 되사거나 팔 수 없는 존재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증거가 우리에게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오늘날 우리에게 할례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 백성으로서 외적으로 드러난 표시는 무엇입니까? 바로 세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죽고 주님이 우리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성도들 앞에서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공동체의 한 지체로 살아가게 됩니다. 유대 사람들이 할례를 통해 거룩한 백성이라는 특별한 증거를 가진 것처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주님의 백성된 것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셋째, 기도는 언제나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이스마엘이나..’라고 했던 아브람의 혼잣말이 나중에 실현되어, 대대로 이스라엘이 고통 가운데 있게 되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로 기도하되, 항상 입을 조심하는 우리가 됩시다. 아브라함은 항상 하나님을 신뢰했지만, 인간 사고의 수준을 넘지 못했던 것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이나, 상상이나, 예측을 뛰어넘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고작 그 정도로 축소하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상상하되 그 폭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되 그 깊이와 넓이를 함부로 재단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하늘 그보다 높고, 바다 그보다 깊고, 우주 그보다 넓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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