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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창세기

by 선한일꾼 2024. 8. 2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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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5:1~32

 

1절을 보면, ‘아담의 역사는 이러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로소 세상에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 있게 살펴봐야 할 내용은 1절 하반절에서부터 2절에 등장합니다.

다시 한번 성경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닮음꼴로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경 말씀대로라면, 우리 스스로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이웃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둘 중의 하나, 또는 둘 다 하나님의 형상을 찾을 수 없다면, 인류는 비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외모를 의미한다기보다, 하나님의 본성을 닮았다고 하는 것이 더 올바른 해석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하나님의 얼굴, , 눈 등 사람에게 있는 지체를 나타내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신의 성품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형상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를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합니다. 혹시 기억나십니까? !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입니다.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은 우리 안에 일차적으로 사랑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향한 사랑, 가족과 이웃을 향한 사랑, 나라와 민족을 향한 사랑, 인류를 위한 사랑이 담겨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면, 인류는 자기 사랑에 치중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 온전한 모습이 깨진 것입니다. 사랑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을 닮은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조각나 하나로 뭉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부서지고, 나눠지고, 쪼개진 사랑의 조각을 이어 붙이셨습니다. 이 사건을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내가 죽음으로 하나되게 한 것을 너희가 나누지 말라는 뜻입니다.

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 섭리, 예수님의 구속의 섭리라는 두 바통을 잘 이어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우리 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지체들을 향한 사람이 온전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일을 위해 부름받은 것입니다.

 

3절을 읽겠습니다. 아담은 백서른 살에 자기의 형상 곧 자기의 모습을 닮은 아이를 낳고, 이름을 셋이라고 하였다.

! 여러분 혹시 3절에서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하셨습니까? 찾으셨죠? 아담에겐 가인과 아벨이라는 다른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아벨은 일찍 죽었다고 치더라도, 가인은 살아있었고, 가인의 후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3절은 아담의 후손으로 만을 언급합니다. 이상하죠! 왜 그랬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관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성경은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역사를 서술해 갈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흥망성쇠를 거듭해도, 하나님께 중요한 역사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그들을 통해, 그 믿음의 순례를 떠나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은 구속의 역사를 이어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특별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물질도, 권력도, 명예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세상이 주류라면, 우리는 비주류이고, 세상이 반짝반짝 빛나는 하이라이트라면, 우리는 저 너머 음지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눈에는 만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눈에는 믿음을 가진 이들이 크게 보입니다. 자녀들을 믿음으로 지켜야 할 특별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 오늘, 그리고 미래를 이끌어갈 구원의 도구로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작은 기도가, 우리의 작은 순종이, 우리의 작은 낮아짐과 헌신이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임을 잊지 맙시다.

4절부터 28절까지는 아담에서 셋, 그리고 노아에 이르기까지의 족보를 죽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모두 오래오래 사셨다는 것입니다. 또 중요한 사실은 오래오래 사셨지만, 모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오래 살아도 그들의 역사는 단 한 줄로 기록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짧게 살아도 하나님 앞에서 위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그랬고, 바울이 그랬고, 베드로가 그랬고,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모두 건강하게 오래오래, 그리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아주 오래 살지 못하더라도,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답고 숭고한 삶이 도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삶만을 위해서만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인정받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을 보면,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다니시던 교회에 계셨더라면, 장로도 되고, 권사도 되고, 어깨도 으슥해하며 사셨을텐데... 작은 교회 와서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고생을 사서 하니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분들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해오셨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충성하십시오. 비록 우리가 드리는 것은 없지만, 하나님이 부족함이 없는 영광과 칭찬을 주시고, 복 주시는 분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살았던 조상들의 이름을 한 번씩 훑어보십시오. 무엇이 보이십니까? 단 한 줄로 요약되기는 했지만, 이분들은 오늘 우리가 가진 신앙을 위해 쓰임받은 분들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영광스러운 삶은 바로 하나님의 쓰임을 받은 삶을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29절을 읽겠습니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짓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우리가 수고하고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노아라는 이름은 위로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죄로 인해 고통받는 인류, 죄로 인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인류에게 노아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이태원 참사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정부는 그들을 위로하기보다, 자신들의 잘못을 덮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의 잘못이냐를 따지면서 매일 논쟁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갑자기 가족을 잃은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위로는 그런 것입니다. 위로는 아픔과 슬픔을 당한 이들이 잘 이겨나가도록 옆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에 소망을 주는 일입니다. 저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노아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교회, 교회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힘든 이 세상에 교회가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서 참 좋다! 그런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라고 정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복을 주고 싶어하시고, 복을 부어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복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는 마십시오. 하나님이 복이 되시니, 하나님 편에 속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 개인의 하나님이 되시고, 여러분 가정의 하나님이 되시고, 여러분 자녀들의 하나님이 되시길 기도하십시오. 무엇보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속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오늘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들은 그런 계보를 이어주고, 이렇게 살았던 이들을 통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이어받았습니다. 그 사랑과 복 주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나날이 되시기를 축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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