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이 지났을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가서 예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래서 이레의 첫날 새벽, 해가 막 돋은 때에, 무덤으로 갔다. 그들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그 돌을 무덤 어귀에서 굴려내 주겠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그런데 눈을 들어서 보니, 그 돌덩이는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 돌은 엄청나게 컸다.(마가복음 16:1~4, 새번역성경)”
옛날 옛적에, 꽤 오래전에 ‘좀머씨 이야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적이 있다. 파크리트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씨 이야기’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몇 번이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좀머씨는 어디로 갔을까? 사라진 좀머씨는 어떻게 됐을까? 그러다가 파크리트 쥐스킨트의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다. 깊이에의 강요, 비둘기, 콘트라베이스 등...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그중에 향수라는 소설도 있었는데, 묘한 감정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래서 두어 번, 아니 더 읽었을 수도 있다. 세월이 훌쩍 지나 거의 20년도 넘게 지난 것 같은데, 향수는 영화로도 나왔다. 아직 영화는 보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너무 오래되다 보니 기억나는 부분이 많지 않아서, 인터넷에 올라온 책과 영화의 줄거리를 참고해서 그 내용을 올려본다.
파크리트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는 지독한 생선 냄새가 나는 프랑스의 한 골목의 시장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그르누이는 음습하고 악취나는 생선 좌판대 밑에서 매독에 걸린 젊은 여인의 사생아로 태어난다. 태어나자마자 탯줄이 잘려 버려지고, 생선 내장과 함께 쓰레기더미에 버려진다. 아기를 버리다 걸린 아이의 어머니는 영아 살인죄로 사형대에서 죽음을 맞는다.
갓난 아이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곧 끝이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지나치리만큼 탐욕스럽게 유모의 젖을 빨아야 했던 아이. 그르누이는 ‘향’이 결핍된 남자였다. 결핍에서 시작된 그의 인생도 별볼일은 없었다. 식성이 좋고, 사람의 향취가 없다며 구박받는 고아의 삶. 그나마 유일하게 열린 소통의 문이 잘 발달된 후각이었다. 꽃에서 나는 향, 죽은 쥐, 나뭇조각, 돌맹이에서 나는 향, 그에게 향은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도구였다.
그라스로 향하던 그는 우연히 한 여인 로라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향에 취한 나머지 여인들의 향에 집착하게 된다. 향수 제조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도시 <그라스>로 간 그는 이제 인간의 냄새를 만드는 일에 전념한다. 물론 그의 목표는 지상 최고의 향수, 즉 사람들의 사랑을 불러일으켜 그들을 지배할 수 있는 그러한 향기를 만들어 내는 데 있다. 향수 제조사에서 향수 제조법을 배운 그는 여인들의 향을 유리병에 담고자 한다. 그로부터 그라스에서는 원인 모를 연속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죽은 이들은 한결같이 아름다운 여자들로 모두 머리칼이 잘린 채 나신으로 발견된다. 온 도시는 공포의 도가니가 된다. 피부, 머리카락에 밴 여인의 향을 긁어모아 액체로 만드는 과정에서 무려 25명을 죽이고, 지상 최악의 살인마가 된다. 스물다섯 번째 목표인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향기가 나는 소녀를 취하고 나서 결국 그는 체포된다.
그러나 사형장에서는 의외의 상황이 전개된다. 그르누이는 자신이 만든, 지금까지 자신이 죽였던 스물다섯 명의 여인에게서 체취한 향수를 바르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군중은 무아지경에 빠져들고, 죽음을 면한 그는 그라스를 떠나 파리로 돌아와 부랑자들 틈에 섞여 산다. 그가 평생에 걸쳐 만든 향기에 이끌린 부랑자들은 그르누이에게 달려들어, 알 수 없는 사랑의 향기에 취해 그의 육신을 모두 먹어 버린다.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는 죽은 예수의 몸(시신)에 바르기 위해 향수(향료)를 가지고 묘지로 향했다. 그르누이가 부랑자들에게 잡아 먹혔던 파리의 어느 묘지만큼이나 공포스러운 아침이었다. 가난한 이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병든 이들을 고쳐주었고, 걷거나 뛰거나 보거나 듣지 못한 사람들의 몸을 온전케 했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었던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세상이라면, 이보다 얼마나 더 비참한 곳이 있을까?
이 절망스러운 아침에 여인들은 안타깝고 비참한 죽음 이후에, 차가운 시신으로 남겨진 나사렛 예수의 무덤을 찾아간다. 생전에 그가 나누어 주었던 아름다운 향기 대신 얹어주기 위함이었을까? 생기있고, 탱탱하고, 건강한 피부는 점점 악취를 풍기며 썩어갈 것이고, 무자비한 구더기들은 생존을 위해 부랑자들처럼 예수의 몸을 먹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데 여인들은 뜻밖의 걱정을 한다. 무덤 앞을 가리고 있는 엄청나게 큰 돌덩이를 어떻게 옮길지가 걱정이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인들은 남자들보다 강하다. 남자들에게 돌을 옮길만한 물리적인 힘이 있다면, 여인들에게는 죽음과 부패도 두렵지 않은 따뜻한 온정(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여인들이 찾은 무덤 이야기의 끝은 모두가 아는 내용이라 더 말할 것도 없다. 무덤 문은 열려 있었고, 나사렛 예수는 다시 살아났다. 죽은 이의 몸에 바를 향수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파크리트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살인자의 이야기>을 꺼낸 이유는 나사렛 예수가 살았던 이 세상과 그르누이가 살았던 세상이 묘하게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만족을 위해 사람을 죽였던 그르누이의 세상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노라고 큰소리 치던 세상은 결국 다른 사람도 자신도 살리지 못했다. 향기로운 향을 바랐지만, 악취 나는 것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나 용기 있게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졌던 나사렛 예수는 이 세상을 더이상 향수가 필요 없는 생명의 땅으로 만들었다. 고난 주간, 한 알의 밀알이 여기저기 뿌려져 우리가 사는 세상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다면 괴상망측한 세상, 그래서 점점 소망이 없어져 가는듯한 이 세상에도 값비싼 명품 화장품이나 가방이 필요 없어지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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