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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십자가', 배역 정하기

QT하다

by 선한일꾼 2024. 2. 19.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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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이 통치하던 신약시대의 유대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분봉왕이라 불리는 통치자가 있었지만, 특정 지역을 행정적으로 분할하여 관리할 뿐 제대로 된 사법(司法)적 권한은 없었습니다. 분봉왕 이전의 헤롯 대왕도 유대의 실질적인 통치자는 아니었습니다. 유대를 장악하기 위한 로마제국의 정치적제도적 안전장치였을 뿐입니다.

 

유대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던 사람은 로마에서 파견한 총독이었습니다. 법이 발전했던 로마제국은 나름의 사법제도(司法制度)가 잘 갖추어져 있었고, 관할 지역의 판단은 총독의 몫이었습니다. 빌라도 역시 나사렛 예수와 관련한 사건을 담당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 사람들에게 사로잡혀온 나사렛 예수에게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사렛 예수가 기껏해야 유대 지배세력과의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존재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나사렛 예수를 심문한 빌라도는 이 사건이 제대로 된 권력다툼에도 속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의였는지, 아니면 무식할 정도로 순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론재판을 통해 예수를 풀어줄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 군중의 반응은 그의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당시 대제사장들과 사두개파 사람들, 바리새파 사람들의 조직적인 사주를 받은 끄나풀이 있었을 테고, 그들은 곳곳에서 활약했을 것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의도대로 군중은 쉽게 흔들렸습니다. 여론을 알기 위해 여론조사를 하는데, 정치인들은 여론조사를 통해 여론몰이를 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빌라도의 여론조사는 나사렛 예수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전개되어 갔습니다.

빌라도는 여기서 결단을 해야만 했습니다. 아예 여론을 묻지 않았다면 몰라도, 전례에 따라 유월절 특사를 통해 한 명을 내보내기로 약속했으니 말입니다. 자신의 판단에 근거해서 죄가 없는 나사렛 사람 예수를 풀어주어야 하는지, 여론의 눈치를 보며 흉악한 살인범 바나바를 내어주어야 하는지 말입니다. 유월절 특사의 주인공은 바나바였습니다. 사실 빌라도에게는 애초부터 여론 재판을 하지 않아도 될 권한이 있었습니다. 여론재판을 했다손 치더라도, 죄가 없는 사람을 풀어주는 것이 마땅한 도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 두 번의 기회를 놓쳤고, 빛나는 로마법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말았습니다. 공정과 정의는 정치인들의 입에서만 맴돌 뿐, 처음부터 현실에서는 동떨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빌라도의 결정에 따라 법은 신속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의 뜻대로 로마 제국을 향해 반역을 저지르던 이들이나 받던 십자가형을 언도받게 됩니다.

로마의 군인들은 나사렛 예수를 희롱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을 상징하는 보라색 옷을 걸치게 한 후, 머리에는 빛나는 금관 대신 가시로 만든 관을 씌웠습니다.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15:18)하고 키득거렸습니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이 부분입니다.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15:19). 군인들은 갈대를 꺾어 나사렛 예수의 머리를 툭툭 치며 비웃었습니다. 침을 퉤하고 뱉는가 하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왕에게 절하는 기사(騎士) 행사를 했습니다. 온 몸이 드러난 메시아의 모습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나사렛 예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갖는 권리를 천부적 인권이라고 말합니다. 나사렛 예수는 최소한의 인권, 최소한의 존중도 없는 가장 비참한 마지막 길을 걸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의 십자가를 대신 진 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15:21).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십자가를 진다는 말을 합니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총대를 멘다라든가, ‘십자가를 진다라는 말을 씁니다. 마가복음 15장에는 진짜 십자가를 멘사람이 등장합니다. 얼떨결에, 갑자기, 억지로 멘 십자가였지만, 그 십자가는 어려운 일을 자기가 한다는 뜻의 대충 십자가가 아니라 진짜(레알) 십자가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지셨던 중력만큼의 무게를 지고, 골고다를 올랐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함께 산을 올랐지만 나사렛 예수가 지셔야 했던 온 인류의 죄와 죽음의 무게는 질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메시아만이 지고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연극에 도전한다면,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요? 어떤 사람은 빌라도가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로마 군인들, 나사렛 예수의 손과 발에 못을 박는 역할, 다른 사람은 유대 사람, 헤롯 대왕이나, 구레네 시몬이 될 것입니다. 성경이 이 부분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당신의 배역은 무엇입니까? 저는 어떨결에라도, 구레네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고 가야 할 십자가는 몹시나 무겁겠지만, 그래도 그게 제일 영예로운 배역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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