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프랭크 스코필드(석호필) 박사의 헌신과 가르침

예화

by 선한일꾼 2025. 7. 15. 20:40

본문

728x90
반응형

     지난 2019년은 3.1 독립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습니다. 이 땅에 천국 복음이 전파된 후 그리스도인들이 천국 제자로서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드러낸 사건이 바로 3.1운동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전체 인구는 1,600만 명으로, 이 중 그리스도인은 1.5 퍼센트에 해당하는 24만 명에 불과했지만, 3.1운동의 주도 세력은 30 퍼센트에 달한 것으로 보고됩니다. 민족 대표 33인 중 그리스도인은 과반수에 달하는 16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간혹, 민족 대표 34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1916년에 캐나다에서 선교를 위해 이 땅에 들어온 프랭크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석호필) 박사를 이르는 말입니다. 3.1운동 당시 만세의 외침과 함께 독립을 절규하며 고난받던 이 땅의 민초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해서 국제 사회에 알리신 분입니다.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던 민중들의 모습, 이들 시위자들에 대한 일제의 탄압과 만행을 알렸고, 같은 해 4월 제암리 일대의 만세 사건 당시 제암리교회와 마을 민가들이 일제에 의해 불타던 모습 및 일제의 잔악 행위를 위험을 무릅쓰고 사진으로 찍어 역사적 보고서로 남겼습니다.

     그 후 다시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해 만세 사건으로 투옥된 유관순 열사 등을 위로하며 격려했고, 이어 대구 형무소를 방문해 당시 독립운동으로 수감되어 고문당하던 한국 여인들에 대한 고문 행위를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1920년에 이 땅에서 추방되었지만, 태나다에서 지속적으로 한국을 돕는 활동을 이어가다가 6.25 전쟁 이후 1958년에 다시 돌아와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외래교수로 이 민족을 섬겼습니다.

     그는 대학의 실력있는 교수로 이 땅 지성의 학문적 발전에 기여했으며, 바쁜 중에도 지속적으로 금, 토 주일 저녁에 여러 곳에서 영어 성경 공부반을 운영하며 말씀으로 젊은이들의 의식을 깨우쳐 미래의 리더십을 키웠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동시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의 등록금, 생활비를 지원했고, 무엇보다 이 젊은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따라 살도록 가르쳤습니다. 특히 그는 하나님 나라의 의를 따라 정의롭고 정직하게 살 것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따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긍휼과 애정을 실천할 것을 강조하며 가르쳤다고 합니다.

 

 

<프랭크 스코필드(석호필) 박사>

 

출처 : 이동원, 쉽게 풀어 쓴 마태의 천국 이야기, 두란노, 132~133쪽에서 가져옴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