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5:1~21절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이끈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아브람의 속내는 복잡했습니다.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들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결국 상속할 아들 하나 없는 처지라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져 왔습니다. 오늘날과는 달리, 고대에는 자손이 많은 사람을 부러워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점점 늙어가는 자신을 보며, ‘이제 포기해야 하나 보다!’하는 생각을 하곤 했을 것입니다.
시편 127편 3~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식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태 안에 들어 있는 열매는, 주님이 주신 상급이다. 젊어서 낳은 자식은 용사의 손에 쥐어 있는 화살과도 같으니, 그런 화살이 화살통에 가득한 용사에게는 복이 있다. 그들은 성문에서 원수들과 담판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시편 127:1절에는 ‘주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시127:1상)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브람의 평생의 수고가 헛되다는 말에 다름이 아닙니다. 아브람은 허전했고, 허망했으며, 두려웠습니다.
그런 아브람을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환상 중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 뒤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15:1)."」 아브람의 마음을 훤히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그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십니다. 그제서야 아브람은 ‘주님이 자식을 주시지 않으니, 장차 상속자는 다마스쿠스 사람 엘리에셀 뿐입니다.’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원래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타들어 가는 속내를 아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전에 하신 말씀과 똑같은 얘기를 하셨습니다. “네 속에서 난 아들이 네 상속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는 그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별들을 셀 수 있으면 세어 보라”,“네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속이 뻥하고 뚫렸을까요? 아니면, 여전히 답답했을까요? 성경은 그의 심정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다 비슷하다는 의미지요. 여러분이라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약속, 무려 이십 년이 훌쩍 지나도록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저 같았으면, “같은 말씀을 계속하시면서, 약속은 지키시지 않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뭐 이 정도는 불평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더 심하게 투덜거렸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달랐습니다. 신기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진심 어린 태도입니다. 6절을 읽겠습니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여전히 믿었습니다. 지금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지금은 불안하고, 지금은 두렵고,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의 진심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향한 이 확실한 믿음을 보고, 그를 더 사랑스럽게 여기셨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끝없이 신뢰하고, 믿어주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하나님도 그러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처음 지으실 때 기대하셨던 것이 이런 종류의 신뢰와 연대감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온전히 아름다운 존재로 지으시고, 아담은 그런 하나님을 신뢰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기억하고, 의지적으로 지켜나가는 소중한 관계 말입니다. 물론 아담은 그런 하나님의 기대와 신뢰를 무참히 무너뜨렸습니다. 다행히 아브라함은 아담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아니 훨씬 절박하고, 원망스러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마음의 하나님은 ‘별’을 가리키셨습니다. 하늘의 별은 아름답지만, 아득하고, 아련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아름답지만, 손을 뻗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별에 불과했습니다. 보통 사람은 웃어 넘겼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별처럼 멀고 먼,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그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별은 아득히 멀지만, 실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먼 것이 다가올 때, 아름다운 약속은 더 빛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믿음은 어디쯤일까요? 우리 신앙은 때로 멀리서 빛나는 별빛 같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멀기만 하고, 우리의 현실은 척박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아브람처럼 하나님 약속 이전에 하나님을 믿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그분을 믿으면, 그분의 약속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7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다. 너에게 이 땅을 주어서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너를 바빌로니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내었다."」 「땅을 주겠다!」 요즘 예배 공간을 위해 기도하고 있던 제 눈에 이 말씀이 확 들어왔습니다. 아브람은 이번에도 날카로운 질문을 이어갑니다. “제가 그걸 어떻게 확신하죠?” 하나님은 삼 년 된 암송아지, 암염소, 숫양과 산비둘기 한 마리, 집비둘기 한 마리를 준비토록 합니다. 몸통을 반으로 가르고 제단에 놓았습니다. 해가 질 무렵 아브람이 깊이 잠들었을 때, 깊은 어둠과 공포가 그를 짓눌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들에게서 태어난 자손들이 사대 사백 년간 이방 나라의 노예로 살다가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에 짐승을 쪼개는 것은 일종의 계약행위입니다. 라틴어에서 유래한 법률 용어 중에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라는 말이 있습니다. 법적인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아주 확실한 약속이 있을 때 두 당사자는 이런 방식으로 엄숙한 예식을 치렀습니다.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쪽이 이렇게 희생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브람의 질문에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일을 이루겠다고 하신 다음,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자손들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여호수아서를 보면, 모두 이루어진 것을 우리도 압니다. 여기서 저는 “땅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솔직히 하나님이 주신다면, 땅이 문제겠는가? 싶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바빌로니아의 우르에서 데려다가 이 자리로 옮겨놓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삶을 살던 우리를 하나님 백성으로 살라고 가나안으로 부르시더니, 우리 힘으로는 얻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대신 사방을 둘러보라고 말씀하시고, 네게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믿음의 눈은 어디를,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보셨다면,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아브람이 나를 믿은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나를 믿느냐? 네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냐? 깊은 어둠과 공포 속에 있는 우리를 위로하시면서, 네가 나를 믿으면, 네가 나를 따르면, ‘네가 짓지 않은 집고, 포도나무와 네가 가진 적이 없는 땅을 네게 주겠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보이지 않으니 믿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억지로 믿으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아브라함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믿읍시다. 달콤한 사람의 말과 속삭임이 아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약속이 여러분 안에 성취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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