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1~20절
창세기 11장에서 우리는 가나안을 향해 가는 여정을 잠깐 살펴보았습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바빌로니아의 우르를 떠나 하란에 정착했습니다. 창세기 12장은 아브람이 다시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가나안으로 보내신 이유는 그로 말미암아 많은 민족이 복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나중에 아브라함은 가나안이라고 하는 새로운 땅에서 믿음의 조상이라는 위대한 이름을 얻게 됩니다.
처음에 아브람은 자신이 가야할 곳이 어딘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고 미지의 땅을 향해 정처없이 길을 나섰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복을 받고,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1. 예배; 우리 삶의 나침반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넓고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이들이 나침반을 통해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해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브람은 예배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부차적인 것이 되면 안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예배를 가장 앞부분에 두십시오. 예배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미리 해 두거나, 미루어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예배는 언제든지 2순위로 밀려나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를 오늘 본문을 가르쳐 줍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예배는 우리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통해 우리가 가야할 곳, 우리가 지금 있는 곳,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묻고,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아브람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으로 새롭게 거처를 옮겼습니다.
2. 말씀을 따라가라
4절을 읽겠습니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길을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나이는 일흔다섯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람과 롯, 이렇게 두 사람의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미지의 땅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롯은 아브람을 따라갔습니다. 같은 길을 가는데 한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는 오늘날 차량의 네비게이션이 목적지를 알려주듯, 계속해서 지시하시는 땅을 향해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롯은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던 사울이 예수님을 뵙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사명을 깨닫게 될 때까지 주변 사람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10절 이하를 보면, 아브람은 기근 때문에 이집트로 이주하게 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길을 잘못 든 것입니다. 여기서 롯은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롯이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그 길을 따라서 갔을 것입니다. 나중에 아브람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롯도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사는 인생과 다른 사람을 쫓아 사는 인생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롯처럼 살 수 있습니다.
스스로 말씀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고, 그 뜻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며 살기 쉽다는 뜻입니다. 나중에 롯은 많은 부를 쌓게 되자 소돔과 고모라 지역의 비옥한 땅과 도시로 이주해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소돔에서 도망쳐 나와 결국 믿음의 계보가 아닌 세상의 계보를 잇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출발은 좋았는데, 나중은 안타깝게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따라 사는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교회만 왔다 갔다, 어영부영하는 인생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마음을 다잡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3. 아브람 이집트로 가다; 아브람도 실수한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곳에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이집트로 이주합니다. 이주하고 보니, 위험한 일이 많았습니다. 특별히 아내를 빼앗길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임시방편으로 상황을 피해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언발에 오줌누기’란 결국 다시 발이 꽁꽁 얼어붙게 될 게 뻔한 일이죠. 아내를 자신의 누이라고 소개하고, 목숨을 부지하고자 한 아브라함의 생각은 처음부터 큰 실수였습니다.
사실 사래가 누이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사래는 이제 아내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살기 위해 거짓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자기가 살기 위해서 이집트의 왕, 바로에게 순순히 아내를 내어줍니다. 애초에 가나안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이 주신 그 자리를 지켰어야 했습니다. 롯의 가족이 소돔과 고모라의 그럴듯한 환경에 무릎꿇었다가 결국 처참하게 무너진 것처럼 아브라함에게도 위험이 닥쳐온 것입니다.
16~17절을 읽겠습니다. 「16. 바로가 그 여인을 보고서, 아브람을 잘 대접하여 주었다. 아브람은 양 떼와 소 떼와 암나귀와 수나귀와 남녀 종과 낙타까지 얻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안에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으므로,」
하나님이 나서주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아내도 빼앗기고, 믿음의 조상으로 살아가는 길조차 어려워질 뻔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개입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구하지 않았다면, 그는 롯과 같은 인물로 남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롯도 하나님은 길을 만드셨고, 그들에게 살 수 있는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문제는 누가 순종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개입에 순순히 따랐습니다. 롯과 그의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삶에서 역사하시는지! 저는 기도할 때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그 이유는 성령님이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일하시면, 아브람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우리에게도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길인지,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순종하고 따르는지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우리는 잘할 때도 있지만, 잘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때마다 민감하게 깨닫고 돌아오면 좋겠지만, 오늘 말씀처럼,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하나님의 강권하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강하게 개입하셔서, 우리를 이끌어가시는 겁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오늘 기도할 때, 이것을 구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문제들, 기도 제목들 하나하나 강권하여 이끌어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 놀라운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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